경기 연천 로컬히어로
한병석의 나무틀 생들기름
전국 곳곳에서 좋은 상품을 선보이는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로컬히어로.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생들기름을 소개하기 위해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한씨가원’을 찾았다.
특허받은 나무틀로 짜낸 생들기름의 맛과 향에서 싱그러움이 한가득이다.
들깨를 볶지 않고 짠 나무틀 생들기름은 영롱하고 맑은 황금색이 특징이며, 어디에 보관해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다.
들깨를 따뜻한 봄볕에 잠시 말린 뒤 탈피 기계로 껍질을 벗긴다. 아마천으로 만든 보자기에 담은 뒤 나무틀 압착기로 기름을 짠다. 경기도 연천군의 로컬히어로 ‘나무틀 생들기름’을 생산하는 과정은 놀랍게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단순한 것일수록 순수에 가까운 것일 터. 들깨를 볶지 않으니 열에 약한 유효성분이 파괴되지 않아 들깨 고유의 영양과 신선한 향이 고스란히 담긴다. 생들기름의 풍미를 잘 설명해주는 표현은 <K FOOD 한식의 비밀 2: 밍밍하다·싸다·비비다>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요리에 비유하자면 참기름은 트뤼프 오일, 들기름은 올리브 오일이다. 그중에서도 맛을 낼 때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의 역할을 한다”라고 윤덕노 음식 문화 칼럼니스트는 설명했는데, 생들기름도 마찬가지로 엑스트라 버진 오일이라 신선한 맛이 일품이다. 활용법도 비슷해 생으로 즐기기 좋다.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먹거나 샐러드에 곁들여도 된다. 물론 나물을 볶거나 두부를 부치는 등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사용해도 더할 나위 없다.
자연 그대로 순수한 생들기름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한씨가원을 이끄는 한병석 대표와 아내 임인숙 씨.
들기름을 만드는 방법은 들깨를 볶느냐, 볶지 않고 생으로 기름을 짜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볶았을 경우는 고소한 향의 여운이 좀 더 길고 색깔은 갈색을 띤다. 볶지 않은 생들기름은 맑은 노란색에 느끼하지 않은 깔끔한 맛, 산뜻한 향이 일품이다.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그뿐, 어떤 것이 더 좋은지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다만 생들기름은 오메가3를 다량 함유해 영양 면에서는 든든하다.
들깨에 풍부한 오메가3는 열에 약해 볶으면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생들기름은 식물성 오메가3를 손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로컬히어로에서 볶은 들기름이 아닌 ‘나무틀 생들기름’을 소개하는 이유도 들깨의 이로운 점을 온전히 전하고 싶은 바람에서다.
"순수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담으려 기름에 철 성분이 닿지 않도록 나무틀을 고안해냈죠. 주문을 받으면 배송 당일 아침에 착유하는 것도 신선함을 위해 반드시 지키는 원칙입니다."
주문을 받고 배송하는 당일 기름을 짜기 때문에 한병석 대표는 일찍부터 분주하다.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 뛰어다니며 완성한 나무틀 압착기에서 짜낸 생들기름은 깨끗하고 귀하다.
“속이지 않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경기도 연천 DMZ와 인접한 장남면은 공장이 들어설 수 없기에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죠. 이곳에서 튼실하게 키운 들깨를 제가 제작한 나무틀 압착기에 넣고 기름을 짜냅니다. 순수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담으려 기름에 철 성분이 닿지 않도록 나무틀을 고안해냈죠. 주문을 받으면 배송 당일 아침에 착유하는 것도 신선함을 위해 반드시 지키는 원칙입니다.”
삶의 철학을 담은 인생의 보석
DMZ 인근이라 공장이 없는 연천군 장남면에서 직접 농사 지은 들깨를 착유하기 전에 잠시 볕에 말려 향을 끌어낸다.
같은 양을 착유해도 생들기름은 볶은 들기름보다 양이 적어 정성을 기울여 소중하게 다룬다.
한병석 대표가 운영하는 한씨가원은 그에게 보석함 같은 곳이다. 윤슬이 반짝이는 생태 연못, 손수 지은 듬직한 통나무집, 각종 과일나무와 허브를 심은 정원과 울창한 숲으로 이뤄졌다. ‘가원家園’이란 러시아의 베스트셀러 철학인문서 <아나스타시아>에서 배워 한병석 대표가 만든 개념으로, 자연의 시간과 함께 어우러지는 자급자족한 삶을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아나스타시아>는 그가 러시아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읽고 나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이다.
한병석 대표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순수한 생들기름을 선보이기 위해 철 소재의 착유기 대신 강한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참나무로 만든 틀을 직접 고안했다.
불안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로 고민하던 그를 15년 전 고향 연천으로 이끈 원동력이었고, 이 책을 번역해 총 10권을 출간하는 10여 년 사이 삶의 지도는 선명해졌다. 더욱이 그가 번역한 책을 미국 알래스카에서 읽은 여인은 한국으로 건너와 그의 아내가 되어 무엇보다 값진 보석으로 빛난다. 이 유쾌한 러브 스토리는 2020년 KBS <인간극장> ‘한씨가원에서 이룬 사랑’ 편으로 방송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황금색 나무틀 생들기름은 깨가 쏟아지는 한씨가원의 부부가 빚어낸 가장 영롱한 보석이며, 순수한 꿈의 결실인 셈이다.
글 박효성 |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6월호) ⓒdesign.co.kr, c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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